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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깃들어 있는 가택신
글쓴이 : 지장선원 날짜 : 2012-02-06 (월) 19:02 조회 : 3222
업신(業神)은 가족들에게 신벌(神罰)을 내리지도 않으면서 다만 재복(財福)만을 내려 주는 신이기 때문에 집안에 깃들기를 소망하고 좋아하는 것일까. 집안에 깃들어 있는 모든 가택신들의 정체는 눈으로 불수도 손으로 만져 볼 수도 없는 무형체임에 반하여 업신만은 눈으로 직접 볼 수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손으로 만져 볼 수도 있는 실물의 동물신이며 동물 중에서도 가장 혐오스럽고 징그러운 구렁이가 그 대표적인 업신으로 받들어져 오고 있으며 족제비나 두꺼비도 결코 귀여운 동물은 아니며 소, 돼지, 개, 더러는 사람도 업신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고는 하니 해괴하고 불가사의 한 재복신신앙(財福神信仰)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부자로 잘 사는 집 고방의 찻독 밑이나 곡간 볏섬 밑, 그리고 지붕의 용마름 밑에는 업신이 깃들어 있어 그 업신의 재복을 불러드리는 영력에 의하여 집안에 재물이 쌓인다고 믿는다. 이 재물의 화신인 업신은 실물이긴 하지만 신격인 영물(灵物)이어서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어쩌다가 그 집 대주나 주부의 눈에 보이는 경우가 있다고도 하는데 이때는 하얀 노인으로 화하여 잠시 나타나며 실물 구렁이로 나타나게 되면 그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로서 집안에 좋지 않은 불길한 일이 생길 조짐이라고 믿는다..

  모든 집지킴이 신들은 성주(집)가 조성되어 거기에서 생활이 시작되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집안의 여러 요처를 중심으로 자동적으로 깃든다고 하지만 업신만은 어느 집에나 깃드는 것이 아니고 복 받은 특정한 집에만 선택적으로 깃드는 것으로 믿는다.

  부자로 잘 사는 집에는 의례히 업신이 깃들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어느 날 어느 부잣집의 곡간으로부터 구렁이 한 마리가 기어 나와 가족들의 눈에 띄었다고 하면 업신이 나왔다고 하여 큰 소동이 벌어지겠지만 가난한 집 울안에 구렁이가 기어 다니면 그것은 흉물스럽고 혐오스러운 한낱 구렁이일 뿐이다. 이와 같이 구렁이, 두꺼비, 족제비가 부잣집에 기어들면 재물의 화신인 업신으로 대접받지만 가난한 집에서 잘못 어슬렁거리다간 푸대접은 고사하고 잡혀 죽기 예사다.

  정초에는 한 해 동안 집안이 무사태평하기를 비는 안택(安宅)굿을 하는데 안택굿은 집안에 깃들어 있는 여러 집지킴이 신들을 위로하고 안돈케 하는 굿이다. 그중 성주신을 달래는 성주풀이의 사설에 업신들이 집안으로 기어들기를 축원하는 사설도 보인다.

        이터 명당을 둘러보니
        명당일시 분명하네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라
        탐남득 거문파
        문필봉이 비쳤으니
        문장 재사가 날 터이요
        노적봉이 비쳤으니
        만석 장자가 날 터로다
        구렁이 업은 기어들고
        족제비 업은 뛰어들고
        두꺼비 업은 걸어드네
        고설 고설 고사로다
        설설이 내리소서.

  구렁이 업, 족제비 업, 두꺼비 업신 등이 집안으로 기어들고 뛰어들고 걸어들어 만석꾼의 부자 장자가 되기를 축수하고 있다.

  요즈음은 구렁이가 거의 멸종되어버려 구경하기조차 어렵게 되었지만 1970년대까지만 하여도 시골마을의 주변이나 산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구렁이였다. 이들 구렁이는 몸길이가 150㎝에서 180㎝ 내외의 크기로 동작이 느리며 집 근처 담장이나 돌무더기 등에 살면서 인가에도 들어와 곡간, 노적가리 등에서 쥐, 병아리, 제비, 까치새끼 등을 잡아먹는다. 몸은 다갈색, 회갈색, 황갈색, 담흑색 등으로 능구렁이, 먹구렁이, 산구렁이, 황구렁이 등 종류에 따라서 그  색깔이 다르다. 속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음흉하고 능글맞은 사람을 빗대어 “구렁이 같은 사람” 또는 “속에 구렁이가 몇 마리 들어 앉은 사람이다”고 하며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명확하게 하지 않고 우물쭈물 남이 모르는 사이 슬그머니 자기에게 유리하게 처리하여버리는 사람을 일러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한다”고도 말한다.

  이와 같이 사람들에게 별로 좋지 않은 정감의 구렁이가 하루아침에 부잣집에 들어와 살면 신통력이 붙어 재물이 불어나게 하는 업신이 되어 최고의 대접을 받는 것이 업구렁이요, 업신신앙인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외갓집은 부자는 아니었지만 마을의 주호급에 속하는 집안이었다. 외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어느 날 어디서 나왔는지 큰 먹구렁이 한 마리가 뒤꼍 장독대로부터 나오더니 앵두나무를 타고 담장을 넘어 옆집으로 넘어 갔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외가는 차츰 가세가 기우러지고 옆집은 차츰 부자가 되었다고 하면서 우리 집의 업신이 옆집으로 건너간 것이라며 매우 애석해 하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이런 경우를 일러 생긴 속담이 “부자 집 업 나가듯 한다”인가 보다. .

  구렁이를 보면 누구나 혐오하고 징그러워 멀리하려 하지만 집안에 구렁이가 나타나면 혹 이것이 우리 집의 업구렁이가 아닐까 하고 내심 반기며 매정하게 쫓지 않았으며 잡아 죽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구렁이라 부르지 않고 “긴 것이 나왔다” 고 하거나 또는 “대감님이 나왔다”고 하여 그 격을 높혀 불렀는데 이는 재복을 가져다주는 영물인 업신에게 불경스럽게 구렁이라 하면 싫어하여  업신으로 좌정하지 않을까 하여서란다.

일반적으로 업신을 말할 때는 구렁이와 족제비, 그리고 두꺼비를 말한다. 구렁이와 족제비는 집안의 곡간, 노적가리, 짚가리, 덕석더미 밑, 작장 벼눌 밑, 대청마루 밑에서 살면서 쥐, 병아리, 참새, 제비 등을 잡아먹고 산다. 그러나 두꺼비는 집안에서 장기간 살기가 어렵다. 오뉴월 한철 칙간 등의 똥항아리 주변에서 구덕이를 잡아먹는 일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두꺼비, 금두꺼비는 재복의 업신으로 표상되고 있다. 중국의 옛 신화에 활 잘쏘는 요(堯)임금의 신하 예(羿)의 아내 항아(姮娥)가 약을 훔처먹고 달나라로 도망하여 미운 두꺼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두꺼비는 달을 표상하는 동물이 된것이다. 또 도교에서는 두꺼비를 행운과 상서로움을 가져다주는 짐승으로 여긴다. 중국 후양(後梁)때 사람 유해(劉海)를 하마선인(蝦蟆仙人)이라 하는데 그는 항시 두꺼비를 끈으로 묶어 데리고 다녔다. 이놈이 틈만 나면 우물가로 달아나기 때문이다. 두꺼비는 이 세상 어디든지 데려다 주는 힘을 가졌기 때문인데 그래서 행운과 상서로움의 동물로 여긴다고 한다.

  다음은 무당 굿 열두거리 중에서 대감거리 중의 한 대문이다.

        부자 되게 도와 주마
        장자 되게도 도와 주마
        곡간도 채우고 단지도 채워서
        명의 노적 쌓아 놓을 적에
        노적더미에 꽃이 피고
        금구렁이 굽을 치고
        업두꺼비 새끼 치고
        금족제비 터를 잡아
        노적 밑에 싹이 나고
        … …

  여기에서도 두꺼비가 구렁이, 족제비와 더불어 집안의 재산이 늘어나게 하고 부귀와 영화가 떠나지 않게 지켜주는 영험함을 가진 업신 임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업을 소중한 가택신의 하나로 받들어 모시기 위하여 곡간 등에 업단지를 그 신체로 설치하여 놓는 집들도 있다. 단지에 쌀이나 돈 꾸미를 넣어 짚 주저리를 씌운 업가리를 곡간 또는 고방의 쌀독 옆에 두기도 하고 혹 뒤꼍의 터주단지 옆에 나란히 두기도 하는데 이러 경우 이것이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띠지 않게 은밀성을 유지하려 하여서이지 부안지방에서 업단지 설치하여 놓은 것을 보지 못하였다.

  이제 업신을 모신 몇 가지 사례들을 들어보기로 하겠다.

  보안면(保安面) 유천리 서편 신복리에 1930년대 무렵 최씨라는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 집의 고방 쌀독 밑에 업구렁이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 업구렁이는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최씨네 큰방 마님에게만 가끔씩 보였는데 하얀 할머니로 나타나곤 하였다. 그래서 안방마님은 매월 그믐날 저녁이면 쌀로 죽을 쑤어 묵 담는 반대기에 담아 쌀독 옆에 놓아주곤 하였는데 다음날 아침에 가서 보면 죽을 거의 다 먹고 조금만 남겨 놓곤 하여 남겨진 죽은 안방마님이 먹곤 하였다고 한다.

  1930년대에 상서면 장다리 마을에 백참봉이라는 분이 큰 부자로 살았다. 농사를 많이 지어 머슴만도 10여명이나 되었는데 큰 곡간의 멍석더미 밑에 구렁이 업신이 살고 있어 백참봉 내외의 눈에만 보일 뿐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멍석을 펴 벼를 말릴 때면 백참봉이 지켜 서서 맨 밑의 멍석은 손도 대지 못하게 하였는데 하루는 백참봉이 출타한 뒤 날씨가 좋아져서 머슴들이 멍석을 모두 들어내어 벼를 말리는데 맨 밑 멍석에서 큰 구렁이가 나와 질겁을 한 머슴들이 구렁이를 멍석과 함께 불에 태워 죽여버렸다. 오후 늦게야 집에 돌아온 백참봉이 벼 말리는 것을 보고 급히 곡간으로 달려가 보니 밑바닥 멍석이 없는지라 연유를 물으니 큰 구렁이가 나와 불태워 죽여버렸다는 것이다. 백참봉이 기가 막혀 넋 나간 사람처럼 한참을 섰더니 “허! 망했구만. 인제 망했어”하고 한탄하였다고 한다.

  과연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 후로부터 백참봉 집의 형세는 점점 기우러져 얼마 후에는 망하였다고 한다. 이들 이야기는 그 근처 마을에 사는 고로(古老)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그런데 구렁이 업에 관한 이야기는 많아도 업두꺼비 이야기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두꺼비 업이 쌀독 안에 들어앉아 있으면 쌀을 아무리 퍼내어도 줄어들지 않는다던가, 또는 쌀독 안에 두꺼비가 허물을 벗어 놓으면(두꺼비도 허물을 벗는지는 몰라도) 이는 만병통치의 선약이 된다는 이야기가 고작이다..

   비가 오는 여름날 두꺼비가 어슬렁어슬렁 집안으로 기어 들어오면 집안 식구들이 모두 반긴다. 행여 부엌의 물항리에라도 들어앉아 업두꺼비 되기를 염원해서가 아닐까. 그러나 두꺼비는 두꺼비일 뿐. 칙간의 주변, 장독대 언저리를 어슬렁거리며 구더기 등으로 양을 채우고 나면 제 갈 곳으로  가버린다.

  족제비가 대청마루 밑에 새끼를 쳤는데 지붕 위 용마름 밑에 사는 구렁이가 그 새끼를 잡아먹었다. 외출에서 돌아온 족제비 부부가 구렁이란 놈의 소행임을 알고 지붕 위 용마름 밑을 습격하여 구렁이와 큰 싸움이 벌어지니, 지붕이 들썩들썩하고 참새와 까치들이 지붕위에서 시끄럽게 지저귀며 야단이다. 기어이 구렁이를 지붕위로 끌어낸 족제비 부부는 구렁이에 감기며 물고 뜯고 한 덩어리져 대굴대굴 굴러 처마 밑 마당으로 절푸덕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마당에서도 한바탕 뒤엉키어 싸우더니 족제비 부부는 새끼 잡아먹은 구렁이를 갈기갈기 찢어 죽여 놓고 가버렸다.

  뒤 늦게 이를 알고 마루에 나와 서서 이를 지켜본 집주인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소중하기 그지없는 재복의 두 업신이 물고 물리고 피투성이로 싸우다 업구렁이가 죽어버렸으니 비통할까 애석할까 서운하고 불안할까. 업신이 깃들어 있어서 좋아라 했다면 얼마나 허망할까. 혀를 차며 이렇게 중얼거렸을 지도 모른다. “ 쯧쯧쯧… 미련한 구렁이 같은이라고. 찻독 옆에나 가 숨어 있을 일이지”.

/김형주

김형주선생님은 1931년 부안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소재(素齋)이다. 전북대학교를 나와 부안여중, 부안여고에서 교사, 교감, 교장을 역임했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부안향토문화연구회와 향토문화대학원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향토문화와 민속’, ‘민초들의 지킴이 신앙’, ‘부안의 땅이름 연구’, ‘부풍율회 50년사’, ‘김형주의 부안이야기’, '부안지방 구전민요-민초들의 옛노래', '속신어와 실아 온 민초들의 이야기'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전북지역 당산의 지역적 특성’, ‘부안읍 성안 솟대당산의 다중구조성과 제의놀이’, ‘이매창의 생애와 문학’, ‘부안지역 당산제의 현황과 제의놀이의 특성’ 외 다수가 있다.

그밖에 전북의 ‘전설지’, ‘문화재지’, 변산의 얼‘, ’부안군지‘, ’부안문화유산 자료집‘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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