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성취기도도량 ▒ 부처골 지장선원 ▒ - 경북 군위, 빙의, 어린영가천도, 구병시식, 벽조목
 
 
홈 | 신행생활 | 이달의 법문
 
총 게시물 13건, 최근 0 건
   
진제대선사 -임오년 동안거 소참법문
글쓴이 : 지장선원 날짜 : 2011-12-16 (금) 08:39 조회 : 582
2002.10.20. 국제무차선법회
 
【사회자】
다음은 선문답禪問答 시간입니다. 선문답이란 문답을 통하여 진리의 세계를 드러내고 또한 스승과 제자간에 깨달음의 경지를 점검하고 이끌어 주는 치열한 구도방식입니다. 언설言說로 표현할 수 없다는 깨달음의 경지에 대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참진리인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체득하게 하는 문답입니다. 큰스님 법문 가운데에서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누구든지 나와서 선문답 취지에 맞게 질문하여 주십시오.
 
【질문자 1】
질    문 : 오늘 법회法會가 무슨 법회입니까?
진제대선사 : 허물이 만 천하에 가득합니다.
질    문 : 개구즉착開口卽錯이오. 입을 연즉은 그르쳤습니다. 내려오시오!
진제대선사 : 차나 한 잔 드시오!
질    문 : 내려오시오!
진제대선사 : 억-! (일할一喝 하시다.)
 
【질문자 2】
질    문 : 제가 임제 사빈주四賓主에 대해 묻겠습니다. 어떠한 것이 임제 사빈주 가운데 주중주主中主-주인 가운데 주인의 도리입니까?
진제대선사 : 구중궁궐리九中宮闕裏에 좌하니 일천 부처님도 보기가 어려움이로다.
질    문 : 어떠한 것이 주중빈主中賓-주인 가운데 손님 입니까?
진제대선사 : 만리강상萬里江上-만리나 되는 강 위에 백구白鷗-흰 갈매기가 훨훨 낢이로다.
질    문 : 빈주賓主-손님과 주인의 상거相距-서로의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진제대선사 : 명월明月이 비치니 청풍淸風이 붊이로다.
질    문 : 스님의 수중手中에 주장자는 어디로 좇아 왔소?
진제대선사 : 불시不是-옳지 못함, 불시不是로다.
질    문 : 필경 그 주장자는 어디에 안심입명安心立命1) 합니까?
진제대선사 : 구구는 팔십일이로다.
 
【질문자 3】
질    문 : 만약 당시에 선사님께서 조주 스님을 대신하셨다면 남전 스님께서 “상서로운 상을 봤느냐?” 할 때 뭐라고 한 마디 하시겠습니까?
진제대선사 : 산승이 만약 당시에 조주 사미가 되었던들 동쪽에서 몇 걸음 걸어 서쪽에 섰다가 다시 서쪽에서 몇 걸음 걸어 동쪽에 서리라.
질    문 : 어떠한 것이 향상向上의 진리입니까?
진제대선사 : 만 리萬里에 기골퇴起骨堆라. 백골白骨-뼈 무더기이 만 리에 즐비함이로다.
질    문 : 그러면 향하向下의 진리는 어떤 것입니까?
진제대선사 : 대지大地의 산과 물이로다.
 
【질문자 4】
질    문 : 스님께서 지금까지 하신 말씀의 소리는 어디에 담았습니까?
진제대선사 : 한 마디도 담은 바가 없소.
질    문 : 그 소리가 어디서 오고 있습니까?
진제대선사 : 한 바가 없는데 온 바가 있겠소?
질    문 : 지금 오고 있는 그 소리는 어디서 오고 있습니까?
진제대선사 : 억-! (일할一喝 하시다.)
질    문 : 끝도 없고 가도 없는 무오광야無悟廣野에 시간세월 또한 무량광無量廣-끝없이 넓음에 흔적도 없는 나는 무입니다. 소리가 없는 자리에서 소리가 오고 그 소리를 만들어 쓰는 사람에 따라서 각기 만들어 써버리는데, 그 본래 소리를 말씀해 주십시오.
진제대선사 : 쿵-!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시다.)
 
【질문자 5】
질    문: 부처와 중생과 마음, 이 셋이 차별이 없다 했는데 스님께서는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진제대선사 : 차별이 없다 해도 삼십 방을 맞아야 돼.
질    문 : 예?
진제대선사 : 차별이 없다 해도 삼십 방을 맞아야 돼.
질    문 : 스님께서 저에게 질문을 해 주십시오.
진제대선사 : 아까 조주 도인께서 머리에 신을 이고 나간 뜻을 한 번 일러 보게.
질    문 : (선사님께 큰 절로써 예삼배를 올리다.)
진제대선사 : 옳지 못하고, 옳지 못해!
 
(대중 박수)
 
【사회자】
그러면 질문하실 분들이 많이 계신 걸로 알겠습니다만 다음 기회에 별도로 큰스님께 직접 참예參詣 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3.01.01 임오년 동안거 소참법문
 
문 : 조사스님들의 천칠백 공안의 도리가 똑같습니까? 차이가 있습니까?
답 : 천칠백 공안 가운데는 법신변사 공안이 있고 여래선의 공안이 있고 향상의 공안이 있고 향하의 공안이 있고 최초구의 공안이 있고 말후구의 공안이 있고 일구의 공안이 있고 이구, 삼구의 공안이 있다. 방금 열거한 여기에서 천칠백 공안이 다 벌어졌다.
그러니 우리가 공부를 해서 최고봉, 향상의 일구라든가 최초구라든가 말후구라든가 일구라든가 이러한 등등을 한번 뚫어 지나갈 것 같으면 모든 공안이 그 가운데 다 해결이 된다. 그렇지 않고 제일 옅은 법신변사 같은데 소견이 나면 견성도 아니고 위의 법문은 일일이 막혀서 활발발지를 얻지 못하고 동문서답을 하거든. 그러니 최고봉이 해결이 되어야 견성이다.
 
문 : 화두를 타고 그것을 타파했다 하더라도 향상구를 얻지 못했으면 다시 화두를 받아야 됩니까?
답 : 향상구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견에 불과하니 견성이 아니거든. 향상의 일구를 투과하는 화두를 다시 타가지고 뚫어내야 된다.
 
문 : 화두를 보통 활구하고 사구로 나누는데 대부분 선지식 스님들께서는 의심에 차이를 두는데 의심 말고 따로 활구, 사구를 나누는 방법이 있습니까?
답 : 사구는 의리선이고 활구는 일천 성인의 이마 위의 일구를 투과해야사 활구를 알구마는. 일천 성인의 이마 위의 일구를 투과하지 못하면 활구의 세계를 모르구마는.
 
문 : 전날에는 제가 금천약샘의 물색을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 제가 바위를 짜니까 물이 한 말 세 되가 나왔는데 어떤 연고입니까?
답 : 하하하. 그래. 내가 아까 말한 그걸 답을 해봐라. 진짜 물맛을 아는가 점검을 하지. ‘황소의 보검을 가져 왔느냐?’ 하는데 수좌가 손가락으로 왜 땅을 가리켰노?
 
문 : 악-!
답 : 아니다. 그것은 죽은 소리다. 그것은 손가락 가리킨 뜻을 모르는 소리다.
 
문 : 제가 그럼 두 가지 질문을 여쭙겠습니다.
답 :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질문이 성립이 되겠나. 쉬운 법문도 모르는데 한로축괴(漢盧逐塊)다.(한나라 개는 던지면 흙덩이를 쫓아가 물려고 하지만 사자는 손을 물거든.) 한로축괴가 되어서 안 되는 법이다. 화두 들고 타파될 때까지 노력을 해라.
 
문 : 네 열심히 공부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두 가지 질문을 여쭙겠습니다.
답 : 질문은, 그것도 모르면서 무얼...
 
문 : 임제 대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수처작주(隨處作主)요 입처개진(入處皆眞)이라 했습니다. 이 주인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입처개진이라 했는데 이 시비도 없고 분별도 없는데 이 진(眞)은 어디에다 세웁니까?
답 : 임제의 잠꼬대 하는 소리니라.
 
문 : 돈수(頓修)는 무엇입니까?
답 : 향상의 일구를 투과하면 즉시 돈수에 이르나니라.
 
문 : 조주 ‘무’자가 향상의 일구가 될 수 있습니까?
답 : 그렇지. 되고도 남지.
 
문 : ‘참학자(參學者)는 원력을 계속 키워야 된다.’고 하는데 원력이란 무엇입니까?
답 : 첫째, 이 대도를 알려면 밝은 스승, 선지식을 만나야 하고, 대오견성을 해야겠다는 철두철미한 원이 앞서야 한다.
 
 
2004.07.15. 갑신년 하안거 소참법문
 
문 : 화두를 들고 애를 쓰다 보면 어느 순간에 끊겨서 화두도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때가 있는데 어떤 방법으로 순일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답 : 화두를 챙기는데 마음에 간절히 우러나는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고, 의심과 화두가 한 덩어리가 되어 쭉 흘러가야 되구마는.
의심만 있고 화두 제목을 흘려버리면 안 되고 화두 제목만 있고 의심이 없으면 그것도 생명력이 없다. 그러니까 제목과 의심이 한 덩어리가 되어 마음 속에 간절히 쭉 흘러가면 안 챙겨도 되고 또 희미해지고 가물가물하면 다시 정신을 새롭게 가다듬어서 화두를 챙기고 이렇게 계속 반복을 하면 된다. 화두 의심이 걸리면 밤에 잠을 안자고 화두와 씨름을 하구마는.
반복을 하고 노력을 하다 보면 참의심이 발동이 걸리는데 그 때는 보는 것도 잊어버리고 듣는 것도 잊어버리고 밤낮이 지나가는 것도 모르고, 제 3자가 봐도 ‘저 사람은 혼이 나간 사람이다.’ 하게끔 일체 의식 분별이 다 차단이 되어버리거든. 화두 간절한 한 생각이 쭉. 이렇게 지속이 되는 과정이 오면 다 견성을 하구마는.
우리가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귀중한 시주밥을 먹고 혼침·망상에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조석으로 예불할 때 ‘화두가 일념이 지속이 되어서 대오견성 하여지이다’ 이러한 간절한 발원 자세를 가지고 정진에 임하면 득력하는 길이 곧 오리라고 보구마는.
 
문 : 진의(眞疑)라는 것이 처음부터 100%의 진의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주작(做作)으로 하다가 조금씩 의심이 커지면서 나중에는 완전한 진의로 커가는 것인지요?
답 : 우리가 노력을 하고 애를 쓰고 씨름을 하다보면 그 때는 일주일 전보다 다르고 혼침·망상이 멀어지게 된다.
타파해야겠다는 의욕에 불타서 화두를 잡으면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잊어버리고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진의가 발동이 걸린다. 화두 일념에 푹 빠져서 흐르다가 홀연히 죽음가운데 삶을 얻어야 되구마는. 그렇게 노력을 하시지.
 
문 : 화두를 하다 보면 망상이 들어오는 것도 알고 망상인 줄 알면서도 망상을 할 때가 있는데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좀 알고 싶습니다.
답 : 우리가 정진에 몰두하기가 어려운 것은 오늘날까지 무시이래로 중생몸을 받아 오는 동안 늘 중생의 습기 가운데 젖어 이 대도의 진리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화두는 깊이 들리지 않고 쓸데없는 혼침·망상만 들어 주인이 뒤바뀌어 전도(顚倒)가 되어 있거든. 그러니 시시각각 발심을 하고 시시각각 신심을 내어서 ‘내가 어떻게 하든지 이 철에 견성대오를 해야 되겠다.’ 작심하고 모든 허점을 다 차단해야 한다.
화두에 강도 있게 집중을 하면 혼침·망상은 점점 멀어지고 화두가 쭉 흘러가는 시간이 길어진다.
무한한 노력 끝에 신심이 아주 철저하게 발할 때 이렇게 되는 것이다. 노력을 하다보면 신심이 나고 분심이 나서 ‘에잇 이 철에 내가 해결해야 되겠다’ 하고 빈틈없이 화두와 씨름하다보면 진의가 발동된다. 이러면 모든 분별이 다 제거가 되고 보고 듣는 것도 제거가 되고 일념에 푹 빠져서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보는 찰나 듣는 찰나에 화두가 타파가 되면 본지풍광(本地風光)의 광명이 현전하게 된다. 그렇게 잘 해 보지.
 
문 : 정진할 때 갑자기 나무나 바닥이 막 흔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마음이 맑아지는데 마장(魔障)은 아닌지요?
답 : 정진하다보면 온갖 경계가 나는 수가 있는데, 그것은 다 분별에서 나오는 것이다. 빛이 발한다든가, 달이 뜬다든가, 천불 만조사가 나타나서 법문을 한다든가 하는 것도 다 분별에서 나오니 공부하는데 마장이다.
화두를 바로 잡아서 간절히 챙기는데 항시 시간을 할애하면 된다.
 
문 : 옛 스님들이 ‘활구로 깨쳐야 된다’고 했는데 정확히 활구가 어떤 것인지요?
답 : 활구는 일천 성인의 이마 위의 일구를 투과해야사 활구의 세계가 열리구마는. 그래야만 모든 부처님과 도인이 설한 법문이 일목요연하게 비밀히 전한 경지를 알게 되고 활발발지를 얻고 일구의 경계를 안다.
그렇지 못하면 동문서답을 하게 된다. 사구(死句)에 걸려가지고 안 된다.
 
문 : 죽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잘 느끼지를 못하겠습니다. 얼마나 그것이 두렵고 어려운 일인지 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답 : 생사안두(生死岸頭)에 매(昧)해버리면 육도윤회를 끊임없이 오늘날까지 받아왔고 앞으로도 그렇다. 인신(人身)을 받아도 조금 낫지마는 축생이나 아귀에 떨어져 놓으면 그 고통이 천갈래 만갈래거든.
정진과 지혜의 힘으로 현재, 과거, 미래 삼생이 일관되게 쭉 흘러가면 모든 고통에서 초연해지고 윤회고통에서 벗어난다.
남을 중상모략하면 지옥가서 천갈래 만갈래 몸을 찢고, 지지고, 혀를 뺀다.
고통받고, 때리고, 지지고 나무둥거리로 다리 사이에 넣어가지고 돌리고 자물쇠 지운다. 지옥에 가면 더 여러 배 되지. 몸이 다 짜개지도록 고통을 받으니까. 지금은 모르지, 중생은. 당해봐야 알거든.
윤회의 고통을 영구히 면하고 부처님의 열반의 낙을 날 적마다 수용하고자 할진대 대안락의 지혜의 눈을 갖춰야 된다.
이 부처님의 견성법은 대오견성만 하면 미래제가 다하도록 적멸낙을 누리거든.
 
문 : 조주 고불스님께서 만행 중에 어떤 암자에 가서 “암주 있느냐?” 하니 암주가 주먹을 쑥 내미니, 말씀하시기를 “물이 얕아서 배를 댈 수가 없구나.” 또 다른 암자에 가서 “암주 있느냐?” 하니 암주가 주먹을 쑥 내미니, 말씀하시기를 “물이 차고 찼구나.” 하셨는데 게송을 지어보겠습니다.
 
마음 밖에 부처를 구한다면 억겁에 무명 더하여
저 수미산 같은 인·아상을 한 번에 쳐 없애버리면
스스로 광명이 드러나게 되리라.
내가 이 모양 없는 주장자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나니
이 속에서 무궁한 조화가 나오는도다. 관(關)!
 
답 : 그것은 조주의 용심처(用心處)와 거리가 먼데. 하하하.
그런 분별은 접어두고 조주가 암주에 대해서 “있고 있느냐?” 하니 암주가 문을 열고 나오면서 주먹을 내미니, “물이 얕아서 배를 댈 수가 없구나.” 하고 가버렸고 또 다른 암자에 가서 “있고 있느냐?” 하니 그 암주도 역시 문을 열고 나오면서 전 암주와 같이 주먹을 내미니 조주 선사가 말씀하시기를 “능종능탈(能從能奪)하고 능살능활(能殺能活)이구나. 능히 놓기도 하고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구나.” 했다.
조주의 용심처를 알아야 된다. 조주는 고불이어서 설두(舌頭)에 뼈가 없어 자유자재하게 쓴다.
 
문 : 스님, 이 마음이 허공보다 이전에 있었습니까?
답 : 하하하. 허공보다 이전에 있었다 해도 30방을 맞아야 돼.
 
문 : 30방을 맞지 않는 한 마디만 일러 주십시오.
답 : 오구진일우봉춘(五九盡日又逢春). 오구가 다한 날에 또한 봄을 만난다.
 
 
2005.05.07. 설선대법회 무차선법문
 
(...전략)
지금으로부터 한 80년 전입니다. 경기도 양주에 망월사라는 좋은 선방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 “30년 결사를 하자. 30여 년 간 마을에 내려가지 않고 정진해서 대오견성을 하자.” 해서 전국에서 발심한 수좌 30여 명이 모였습니다. 그래서 용성(龍城) 대선사를 조실로 모시고 석우(石友) 선사를 선덕으로, 운봉(雲峰) 선사를 입승으로 모시고 멋진 회상을 열어 정진을 잘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결제 중 반살림이 도래하여 조실이신 용성 대선사께서 법상에 오르시어 법문을 하시기를,
“나의 참모습은 과거·현재·미래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도 보지 못함이요, 역대의 무수 도인들도 보지 못함이어니 여기 모인 대중은 어느 곳에서 산승의 참모습을 보려는고?”
하니, 운봉 선사가 일어서서
“유리 독 속에 몸을 감췄습니다.”
하고 멋진 답을 하셨습니다.
만약 산승이 그 당시에 있었다면 빗장 관 자 “관(關).”이라고 달리 답을 하겠습니다.
당시에 운봉 선사가 “유리 독 속에 몸을 감췄습니다.”라고 답을 하자 조실이신 용성 대선사께서는 아무 말 없이 법상을 내려와 조실방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면 용성 대선사께서 “....어느 곳에서 나의 참모습을 보려는고?” 하실 때 운봉 선사께서 ‘유리 독 속에 몸을 감추었다.’ 하신 부분과 산승이 달리 빗장 관자 ‘관’이라고 한 뜻과 조실 스님께서는 아무 말 없이 법상에서 내려가셔서 조실 방으로 돌아가신 부분, 이 세 가지에 대해 금일 모든 대중가운데 답할 사람이 있으면 해 보십시오!
만약 여기에서 바른 답을 하면 산승에게 선의 진미(眞味)의 문답을 용납하거니와 여기에 바른 답을 못하면 선의 법을 문답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하겠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사(邪)와 정(正)을 가리지 못하고 동(東)과 서(西)를 가리지 못하니 문답할 자격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 세 부분에 바른 답을 하는 이가 있을 것 같으면 산승이 이 주장자를 전할 것이고 바른 답을 못하면 물을 자격이 없으니 물음을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이 세 가지에 대해 답할 사람이 있거든 정면에 와서 해 보시오.
 
[사회자] 조실스님께서 고준한 법문을 내려주셨고 법거량을 할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해서 대답하실 분이 계시면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답1] 저는 명륜동에서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는 류두식입니다. 저는 세 가지 중에 조실스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진제대선사] 답을 하라고 하는데 “조실스님을 따라가겠다.”고 하니 무슨 소린고?
 
[사회자] 지금 거사님께서는 조실스님께서 내려주신 세 가지 질문에 대한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 나와서 대답해 주십시오.
 
[대답2] (앞으로 나와서 한 바퀴 구름)
 
[진제대선사] 아무리 구르고 곤두박질을 하더라도 정답과는 거리가 멉니다.
 
[대답2] 중국의 방거사 딸 영조가 “불법(佛法)이 풀끝에 전부 다 나타났다.” 고 했는데, 저는 그렇게 하지 말고 “보는 것이 전부 다 불법이다. 불법 아닌 것이 없다. 보는 것이 전부 현전하게 다 나타났다.”라고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진제대선사] 그것은 놔두고 내가 아까 물은 세 가지를 명백히 하나하나 들어서 말해야지.
 
[사회자] 지금 거사님 역시 조실스님께서 내려주신 세 가지 질문에 대해서 전혀 접근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먼저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말씀하시고 나서 다른 질문을 하셔야 됩니다.
아무튼 선지식 스님께 소견을 밝히고 점검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어떤 방식으로라도 용기를 가지고 답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답이면 조실스님으로부터 주장자를 받으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정진의 기회로 삼으면 되는 것입니다.
 
[진제대선사] 잘 알겠습니다. 금일 참여한 모든 대중가운데는 이 세 가지 물음에 답하는 이가 없다고 선을 딱 긋겠습니다.
그러면 산승이 양 팔을 걷어붙이고 이 세 가지에 대해 답을 해서 만 천하에 나의 살림살이를 공개하겠습니다.
용성 대선사께서 “나의 참모습은 모든 부처님도 보지 못함이요, 역대 도인 스님께서도 보지 못함이어니 시회대중(是會大衆)은 어느 곳에서 나의 참모습을 보려는고?” 하니 운봉 선사께서는 “유리 독 속에 몸을 감췄다.” 하셨지만, 산승이 만약 그 당시에 있었다면 빗장 관자 “관(關).”이라고 답을 한다고 했습니다. 운봉 선사의 대답에 용성 대선사께서는 법상을 내려오셔서 즉시 조실방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조실방으로 돌아가신 뜻은 무엇인지? 이 세 가지에 대해서 점검할까 합니다.
운봉 선사께서 ‘유리 독 속에 몸을 감췄다’ 하는 것은 ‘도적의 몸이 드러났다’고 하겠습니다.
산승이 빗장 관자 ‘관’하는 것은 ‘수십 길이나 되는 철판의 울[울타리]을 중중으로 둘러놓으니 나는 새도 드나들기 어렵다’ 하겠습니다.
 왜 이렇게 나오는지 알아야 합니다. 용성 대선사께서 말없이 법상을 내려가시는 것은 운봉 스님의 답을 척 아시고 법상을 내려가시니 ‘얼굴에 부끄러운 빛이 가득함이로다’ 라고 평하겠습니다.
그러나 선지식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선지식입니다. 이런 선지식이 그 당시에 있었다는 것은 정말 고개를 숙이고 예배를 올리고 올립니다. 산승이 이러한 살림살이를 천하 대중에게 점검하라고 노출을 해 놓습니다.
이제는 화두 드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을 받겠습니다.
 
[사회자] 어떠한 질문도 좋으니 나오셔서 질문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너무 긴장을 하셔서 묻고 싶은 질문이 있는데도 안 나오시는 것 같은데 어떤 질문도 좋으니까 다시 만나기 힘든 이 기회에 편안하게 질문을 올리도록 해주십시오.
 
[질문1] 요즘 들어 우리나라에도 남방의 위빠사나 같은 소승 수행법이 많이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예로부터 소승의 수행법으로는 부처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간화선을 주창해 왔고, 또한 부처님의 정법이 간화선맥으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통 수행법인 간화선의 힘은 무엇입니까?
 
[진제대선사] 잘 알겠습니다. 위빠사나와 화두참구 두 가지를 수행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인 줄 생각됩니다.
위빠사나도 수행의 일종이지만, 무한한 세월이 흐른 후에 설사 깨닫는다 해도 ‘법신(法身)의 진리’와 ‘여래선(如來禪)의 진리’의 눈이 열릴 수는 있지만 최고 ‘향상(向上)의 일구(一句) 진리’를 깨닫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모든 부처님과 도인께서 법신의 진리나 여래선의 진리를 전한 것도 아니고 향상의 일구 진리를 오늘날까지 면면히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부처님과 도인께서 전하신 향상의 일구는 활구참선, 즉 간화선이라야 그 관문을 투과할 수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간화선의 깨달음의 열쇠는 일념삼매가 지속이 되는 그 과정에 있습니다. 의심과 화두가 한 덩어리가 되어서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앉아 있어도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밤낮으로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보는 찰나,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납니다. 의심이 크면 깨달음도 크다 했거든요.
위빠사나는 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관(觀)하는 것이거든요. 그것은 힘이 미약해서 대오견성(大悟見性)을 못합니다. 여러분, 잘 아시겠지요?
 
[질문2] 근래에 저뿐만 아니라 많은 대중들께서 선 수행에 있어서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에 대해서 아마 궁금해 하는 분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번 설선법회에서도 언급이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에 대해서 옳고 그름, 높고 낮음을 논하지 마시고 돈오돈수와 돈오점수가 어떻게 선 수행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조실 스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진제대선사] 돈오돈수는 오종가풍(五宗家風)의 법칙입니다. 중국에서 육조 스님 이후로 오종 가풍이 형성되었는데 모두 돈오돈수의 가풍을 제창하였지, 몰록 깨닫고 점차로 닦는다는 돈오점수의 가풍을 유포한 대선지식의 종장(宗匠)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옛 도인들의 바른 길을 나의 살림살이의 근본으로 받아들여 참구해야 합니다. 돈오돈수의 바른 수행법으로 일념삼매가 되어 홀연히 대오견성이 되면 팔만사천 번뇌가 바로 팔만사천 지혜로 돌아와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제거할 것도 없고 점수(漸修)할 것도 없는 법입니다. 깨달음의 삼매를 가나오나 시간이 흐르나 항상 스스로 수용하는 것이 돈오돈수의 살림살이입니다.
돈오점수는 몰록 깨달아 또 습기(習氣)를 제한다는 말입니다. 차제가 있 어서 견성에 이르는 법이 없습니다. 역사를 보더라도 밝은 명안종사(明眼宗師)는 돈오돈수를 제창했지 돈오점수를 제창한 이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조 스님 당시에 신수(神秀), 육조 스님 당시에 하택(荷澤), 200년 후의 규봉(圭峰), 우리나라 근래에 와서도 바른 정안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점수 사상을 많이 유포시켰습니다. 그것은 ‘향상(向上)의 일구(一句)’를 몰라서 그러한 사상에서 탈피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질문3] 올바른 활구참선법은 한걸음도 내딛지 않고 곧바로 부처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한걸음도 내딛지 않고 부처님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진제대선사] 일천 성인(一千聖人)의 이마 위의 일구(一句)의 진리가 있습니다. 법신변사(法身邊事)니 여래선변사(如來禪邊事)가 아니라 이마 위의 일구, 즉 향상의 일구를 투과해야만 한걸음도 옮기지 않고 부처님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일천 성인의 이마 위의 일구를 투과하는 정진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질문4] 예로부터 깨치기 위해서는 선지식, 도량과 도반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만약 세 가지를 다 갖추지 못할 경우는 무엇을 의지해서 공부해야 합니까?
 
[진제대선사] 이 세 가지 중에 가장 값진 것은 눈 밝은 선지식을 만나는 것입니다. 허공보다도 넓고 광대무변한 진리의 세계! 밝은 눈을 갖춘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면 몇 생이나 어긋납니다.
부처님께서도 ‘무사자오(無師自悟)는 천마외도(天魔外道)’라고 못을 박아 놨습니다. 즉 ‘스승 없이 대도를 깨달았다’ 하는 것은 망념 중의 망념입니다.  
왜냐하면 동서남북, 상하사유(上下四維), 이 광대무변한 허공의 경계는 다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허공보다 더 넓은 부처님의 진리의 세계를 ‘혼자서 알았다’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동쪽 허공의 한 부분만 보고 ‘다 알았다!’ 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동서남북 상하사유, 진리의 전체를 다 봐야 합니다.
그것은 선각자가 아니면 바르게 인도할 수 없고 점검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세 가지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은 눈 밝은 선지식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밑에서 바르게 참구하고 바른 지도와 바른 탁마를 받는 과정에서 결과가 이루어지는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겠지요?
 
[질문5] 화두를 들고 있는데 잘 때가 문제입니다. 목침을 베고 자는 그 때에는 어떻게 챙깁니까?
 
[진제대선사] 참의심이 발동 걸리면,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일념이 흐르는 시냇물 같이 마음속에 지속되게 됩니다. 보고 듣는 모든 분별이 마비되고 화두 한 생각만 흘러갑니다. 잠이 들더라도 화두와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꿈을 꾸더라도 다른 꿈은 안 꾸어지고 화두를 아주 또록또록 챙기는 그 꿈만 흘러갑니다. 결국 이렇게 되려면 마음에 사무치는 참의심의 발동이 걸려야만 됩니다.
아직 처사님은 참의심의 발동이 안 걸렸으니 일념이 지속되도록 무한한 정진에 몰두해 주시기 바랍니다.
 
[질문6] 재가(在家) 신도로서 인과에 대한 법문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들 재가 생활자로서는 어쩔 수 없이 인연에 걸릴 일이 많이 있는데 참선을 하면 그 인과와 어떤 관계를 이룰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진제대선사] 참선을 잘 해서 진리의 바른 눈이 열리면 과거·현재·미래 삼생(三生)의 중생의 인연이 직하(直下)에 다 없어져 버립니다. 봄바람에 온 산하의 눈이 일시에 녹듯이 진리의 눈이 활짝 열릴 때 삼생 업이 다 녹아서 없어지고 동시에 모든 악한 인연도 단절이 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과 대보살들과 같은 정안(正眼)이 열리면 억만년이 다하도록 불국토에서 부처님과 손을 잡고 열반락(涅槃樂)을 멋지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
 
[질문7] 화두에는 1700 공안(公案)이 있다고 하는데, 그 공안들이 현 시대와 너무 거리가 멀어서 의심이 잘 안 일어난다고 합니다. 스님은 자타가 공인하는 법맥을 이으셨는데 스님께서도 이 시대에 맞는 화두를 생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마삼근(麻三斤) 화두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스님께 여쭈어 보겠습니다. 스님, 무엇이 불법(佛法)입니까?
 
[진제대선사] 하하하, 그래요. (주장자를 세워 법상을 한 번 쳐 보이신 후) 그런데 1700 공안은 도인들이 견성을 하셔서 베풀어 놓은 것입니다. 마치 고기 잡는 그물이 한 코가 풀리면 백천 그물이 다 풀리듯, 한 공안만 타파되면 백천 공안이 다 타파가 됩니다.
왜냐하면 천불 만조사가 심성의 고향에 돌아가서 법문을 베풀어 놓았기 때문에 다 서로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몸뚱이는 허망해서 노소를 막론하고 한번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지 못하면 썩어서 화장하고 묻어 버리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몸뚱이는 참나가 아닙니다. 산승은 항시 이러한 화두를 많이 줍니다.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고?’ 이 참나 가운데 모든 진리가 다 있습니다. 부처님도 참나를 아시어 위대한 부처님이 되셨고, 도인들도 똑같이 참나를 깨달으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참나를 안다면 부처님이 되시고 도인이 되어서 무진(無盡) 법문이 쏟아져 나옵니다. 여러분, 잘 아시겠지요?
 
[질문8] 저는 이름도 없고 성도 없습니다.
 
[진제대선사] 이름도 없고 성도 없다 해도 이 주장자로 한 방망이 맞아야 되겠는데.
 
[질문8] 억-!
 
[진제대선사] 억-!
 
[질문8] 그러면 제가 한 가지 묻겠습니다. 옛날에 사조(四祖) 도신(道信) 대사가 삼조(三祖) 승찬(僧瓚) 대사한테 법을 받으러 왔습니다.
승찬 대사가 “한마디 일러라!” 하니 도신 대사가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라고 했는데 이 도리가 어떤 도리입니까?
 
[진제대선사] 처사가 뒷북을 쳐도 이만저만이 아니네. 아까 물을 때(세 가지 질문)는 벙어리가 돼 있더니 지금 엉뚱한 소리를 하니. 어허허허.
쉬시고 참나를 바로 알아가지고 한번 찾아오십시오.
 
[질문9] 요즘 출가 대중도 지계(持戒) 청정(淸淨)치 못한 부분이 많고 재가자들도 도덕적으로 많이 타락해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지계 청정치 않고 대도(大道)에 들 수 있겠습니까? 큰스님!
 
[진제대선사] 대도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계(戒)가 근본이 됩니다. 계행이 청정한 가운데 화두를 아주 간절히 들어서 일념삼매의 정(定)에 들어야 도가 성취됩니다. 정이 이뤄지는 그 가운데 홀연히 밝은 지혜가 갖춰지는 법입니다. 이 셋이 하나이면서 세 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를 원만히 구족할 때 부처님과 같은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질문10] 저는 일 년 전에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화두를 받고 일반 선원에서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진제대선사] 우리가 이 세상에 왔지만 전생도 깜깜하고 내생도 깜깜합니다. 생명은 호흡지간에 있어서 허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과 같이 자기의 참 모습을 바로 볼 것 같으면 이집에서 저 집으로 이사 가는 것과 같아서, 방거사 가족과 같이 멋지게 벗고 가는 자유로움을 갖춥니다. 적적(寂寂)한 최고의 향상 일구를 깨달아 정안(正眼)을 갖춘 이는 홀연지간에 자유롭게 몸을 벗으며 진리의 고요한 삼매(三昧)를 누립니다. 적적삼매를 누리면 사바세계 삼천 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갑니다.
여러분!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고?’ 참나 가운데 모든 진리가 다 있습니다. 참나를 알 것 같으면 부처님 국토에 이르고 억만년이 다하도록 나고 죽는 고통이 없는 적적삼매의 낙(樂)에 편안하게 머물게 됩니다.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똑같이 말해 놓았습니다. 그러니 일상생활 중에 간절히 화두가 흘러가도록 전력을 다하고 다해서 시절 인연이 도래하여 자신의 참모습이 홀연히 드러날 때, 산승이 틀린 말을 했는지 바른 말을 했는지 확인이 될 것입니다.
 
[사회자] 이것으로서 무차선법회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깊은 법문을 내려주신 진제 큰스님께 큰 박수를 보내주시기

이름 패스워드
비밀글 (체크하면 글쓴이만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왼쪽의 글자를 입력하세요.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